"아버지가 술만 드시면 며칠 전 일을 전혀 기억 못 하세요." "요즘 부쩍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하셨는데, 혹시 치매일까요?" 이처럼 과도한 음주 습관과 함께 나타나는 기억력 감퇴나 성격 변화를 마주하면, 우리는 덜컥 겁부터 납니다. '혹시 술 때문에 치매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죠.
많은 분들이 치매라고 하면 모두 똑같은 병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치매는 원인에 따라 그 종류와 증상이 아주 다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알코올성 치매'는 우리가 흔히 아는 노인성 치매, 즉 '알츠하이머병'과는 병의 뿌리부터 완전히 다른 질환입니다. 그리고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치료와 회복의 가능성'에 있습니다.
병의 원인이 달라요: '독성 물질' vs '이상 단백질'
두 질병을 가르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우리 뇌를 망가뜨리는 '범인'이 누구냐입니다. '알츠하이머병'은 '베타 아밀로이드'나 '타우' 같은 이상한 단백질 찌꺼기가 뇌 속에 쌓여, 신경세포를 서서히 죽여나가는 병입니다. 아직까지 왜 이런 찌꺼기가 쌓이는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알코올성 치매'의 범인은 아주 명확합니다. 바로 '알코올(술)'이라는 강력한 독성 물질이죠. 장기간에 걸친 과도한 음주는 뇌세포에 직접적인 손상을 입히고, 특히 기억을 저장하는 데 필수적인 '비타민 B1(티아민)'의 흡수를 방해하여 뇌 기능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즉, 알츠하이머가 원인 불명의 내부의 적에 의해 발생한다면, 알코올성 치매는 외부에서 들어온 명백한 독극물에 의해 발생하는 셈입니다.
결정적 차이 1: '기억'이 사라지는 방식
이처럼 병의 원인이 다르기 때문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초기 증상에도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의 가장 대표적인 초기 증상은 '최근 기억'부터 서서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뭘 먹었더라?", "어제 손주가 다녀갔었나?" 처럼, 새로운 정보가 뇌에 저장되지 못하는 증상으로 시작하여, 점차 먼 과거의 기억까지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알코올성 치매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이들은 오래된 과거의 일은 비교적 잘 기억하지만, 술을 마신 특정 기간의 기억이 마치 필름이 끊긴 것처럼 통째로 사라져버리는 '블랙아웃' 현상이 잦아집니다. 또한, 사라진 기억의 빈틈을 자신도 모르게 그럴듯한 이야기로 꾸며내어 채우는 '작화증'이라는 아주 특징적인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결정적 차이 2: '성격'의 변화
성격 변화에서도 두 질병은 다른 길을 걷습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은 보통 병이 진행되면서 의욕이 없고 무기력해지며, 점차 말수가 줄어들고 내성적으로 변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반면에 알코올성 치매 환자들은 감정 조절에 큰 어려움을 겪으며, 아주 사소한 일에도 쉽게 욱하고 화를 내는 등 '공격적'이고 '충동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알코올이 우리 뇌에서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전두엽' 기능을 집중적으로 손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감정 기복과 폭력성은, 알코올성 치매를 의심해봐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신호입니다.
결정적 차이 3: '회복'의 가능성
안타깝게도, 두 질병은 치료 결과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입니다. 현재까지 알츠하이머병은 병의 진행을 늦추는 약물은 있지만, 이미 손상된 뇌세포를 되살리거나 병을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습니다. 한번 시작되면 서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빠지는 길을 걷게 되죠.
하지만 알코올성 치매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이 병의 원인은 '알코올'이라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그 원인을 제거하면 병의 진행을 막거나 심지어 일부 기능을 회복할 수도 있습니다. 즉, 술을 완전히 끊는 '단주'를 하고, 부족해진 비타민 B1을 적극적으로 보충하는 치료를 받으면, 더 이상 뇌가 손상되는 것을 막고 일부 인지 기능이 호전될 수 있습니다. 이 '회복의 가능성'이야말로, 두 치매를 구분 짓는 가장 결정적인 차이점입니다.
젊다고 안심할 수 없다
치매는 보통 노년층의 질병으로 여겨지지만, 알코올성 치매는 예외입니다. 과도한 음주 습관은 나이와 상관없이 뇌를 손상시키기 때문에, 40~5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를 '초로기 치매'라고 부릅니다.
젊다는 이유로, 혹은 "나는 술이 세서 괜찮아" 하는 잘못된 자신감으로 폭음을 계속한다면, 남들보다 훨씬 더 이른 나이에 뇌의 노화를 겪게 될 수 있습니다.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게 자랑이 아니다" 라는 말을, 뇌가 보내는 심각한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셔야 알코올성 치매에 걸리나요?
A. 정해진 기준은 없습니다. 개인의 유전적 요인이나 영양 상태, 건강 상태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시는 양보다 '얼마나 오랫동안 꾸준히 많이 마셨는가' 하는 '음주 기간'입니다.
Q. 술을 끊으면 정말 뇌 기능이 다시 좋아질 수 있나요?
A. 네, 가능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단주 후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지나면 손상되었던 뇌의 부피가 일부 회복되고 인지 기능이 개선된다는 보고가 많습니다. 물론 완전히 예전처럼 돌아가기는 어렵지만, 더 나빠지는 것을 막고 호전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단주는 매우 중요합니다.
Q. 증상이 의심되면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나요?
A. 뇌와 신경계의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신경과'나, 알코올 의존 문제를 함께 다룰 수 있는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뇌 MRI 검사나 신경 심리 검사 등을 통해 치매의 원인과 정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추가 정보 및 도움이 되는 자료
- N 의학정보( 노인성 치매 [senile dementia] ) - 서울대학교병원
알콜성치매는 만성 음주로 인한 기억력 및 판단력 저하가 특징이고, 알츠하이머 치매는 점진적 기억력 감퇴가 뚜렷한 퇴행성 뇌질환입니다. - 알츠하이머병 - MSD 매뉴얼
알츠하이머는 최근 기억부터 서서히 악화되며, 알콜성치매는 갑작스러운 기억력 저하와 함께 신체적결손이 흔합니다. - 치매, 얼마나 알고 있나요? - 국민건강보험
알콜성치매는 음주와 연관된 뇌 손상, 알츠하이머 치매는 단백질 이상 침착으로 뇌세포가 죽으며 간접·직접적 원인이 다릅니다. - 치매 원인과 종류, 전조증상, 예방방법 - 시니어톡톡
노인성치매는 대부분 생활습관보다 뇌의 퇴행성 변화, 알콜성치매는 지속적 음주에 의한 뇌손상이 원인입니다. -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 | 질환백과 | 의료정보 - 서울아산병원
알츠하이머는 본질적으로 비가역적 진행형이나, 알콜성 치매는 절주로 일부 증상 호전 가능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