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이 시큰거려요."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이 말에, 자녀들은 으레 '글루코사민'이나 '콘드로이친'이 함유된 관절 영양제를 선물하곤 합니다. TV 광고에서도 연일 관절 건강의 필수품처럼 소개되니,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 성분들이 실제로는 효과가 없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수많은 논문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논쟁,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요? 오늘 이 글에서는 혼란스러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진짜 사실'은 무엇인지, 그리고 관절 건강을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드리겠습니다.
한때 '꿈의 성분'이라 불렸던 이유
먼저 글루코사민과 콘드로이친이 왜 이렇게 유명해졌는지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루코사민은 우리 몸에서 연골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재료' 중 하나이며, 콘드로이친은 연골에 수분과 영양을 공급하고 탄성을 유지하게 하는 '쿠션' 역할을 합니다. 즉, 이 두 성분은 닳아버린 연골을 보충하고 보호해 줄 것이라는 이론적인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초기 연구들에서는 이 성분들이 관절 통증을 완화하고 연골 손상을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결과들이 발표되었습니다. 이 결과들은 관절 영양제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고, 두 성분은 관절 건강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효과 없다"는 충격, 논쟁의 시작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수천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의 엄격한 임상시험(GAIT 연구 등)들이 진행되면서, "글루코사민과 콘드로이친이 위약(가짜 약)과 비교했을 때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통증 개선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들이 연이어 발표된 것입니다.
이 연구들은 우리가 섭취한 글루코사민 성분이 위장에서 소화, 분해되어 실제로 관절 연골까지 도달하는 양이 매우 미미하며, 설령 도달하더라도 이미 손상된 연골을 재생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미국, 유럽 등 여러 국가의 정형외과 학회에서 "퇴행성 관절염 치료에 글루코사민과 콘드로이친을 더 이상 권고하지 않는다"는 가이드라인 변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효과 봤다'는 사람들의 비밀
"그래도 저는 먹고 나서 무릎이 한결 부드러워졌는데요?" 분명 이렇게 효과를 봤다고 느끼는 분들도 많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위약 효과(Placebo Effect)'입니다. 좋은 약을 먹고 있다는 믿음 자체가 통증을 긍정적으로 조절하는 뇌의 작용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둘째, 이 성분들이 모든 사람에게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특정 유형의 환자나 초기 관절염 환자에게서 약간의 통증 완화 효과가 관찰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효과가 '연골 재생'과 같은 근본적인 치료 효과라기보다는, '일부 항염증 작용'에 의한 미미한 증상 개선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식약처는 왜 '건강기능식품'으로 인정했을까?
국내에서는 여전히 글루코사민과 콘드로이친이 '관절 및 연골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는 기능성을 인정받은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기능성을 인정할 때, 질병의 '치료'가 아닌 '건강 유지 및 개선'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즉, 식약처의 인정은 이 성분들이 의약품처럼 '손상된 연골을 치료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관절 건강 유지에 일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수준에서 인정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제품들을 '연골 재생 치료제'로 오인해서는 안 되며, 맹신하기보다는 보조적인 수단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진짜 관절 건강을 위한 최고의 선택
그렇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성분에 의존하는 대신, 우리가 관절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며,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들입니다. 바로 '체중 조절'과 '꾸준한 운동'입니다.
체중을 1kg만 줄여도 무릎 관절에 가해지는 부담은 3~4kg이 줄어듭니다. 또한, 수영, 실내 자전거, 평지 걷기와 같이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을 통해 허벅지 근육(대퇴사두근)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어떤 영양제보다 강력하게 무릎 관절을 지지하고 보호해 주는 최고의 '천연 보호대' 역할을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 이미 글루코사민을 먹고 있는데, 계속 먹어도 될까요?
A. 섭취 후 특별한 부작용이 없고, 본인 스스로 통증 완화 효과를 느끼고 있다면 굳이 중단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이것이 근본적인 치료제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체중 관리와 운동을 반드시 병행해야 합니다.
Q. 그렇다면 어떤 관절 영양제를 먹는 것이 좋을까요?
A. 최근에는 관절의 염증 반응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MSM(식이유황), 보스웰리아, 초록입홍합추출오일 등의 성분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보조적인 수단이며, 효과에 대해서는 개인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섭취 전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습니다.
Q. 관절 통증이 심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영양제에 의존하기보다는, 즉시 정형외과를 방문하여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통증의 원인에 따라 약물 치료, 주사 치료, 물리 치료 등 적절한 의학적 치료를 받아야 증상 악화를 막을 수 있습니다.
추가 정보 및 도움이 되는 자료
- 건약의 의약품 적색경보 5호, 글루코사민과 콘드로이친 효과 의문 -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미국 국립보건원의 임상시험 결과 글루코사민과 콘드로이친은 위약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근거를 중심으로 효과 논란과 부작용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 글루코사민-콘드로이친 “플라시보와 뭐가 다른데?” - 메디포뉴스
글루코사민 관련 초기 긍정 연구와 그 한계, 미국 국립보건원 시험 결과 및 부작용 주의사항을 신뢰할 수 있는 의료 전문 매체가 다룹니다. - 08화 글루코사민과 콘드로이친 관절 건강에 도움이 될까 - 브런치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임상시험 결과를 근거로 관절염 개선 효과가 미미함을 객관적으로 분석한 글입니다. - 건강약사회 “글루코사민·콘드로이친 효과없다” - 메디컬투데이
중장년층 선물용으로 인기 있었던 글루코사민·콘드로이친의 효과 미비 문제와 관련 논란을 정리한 최신 기사입니다. - 글루코사민, 경미한 관절염에 ‘효과 없어’ - 약사공론
심하지 않은 관절염 환자에 글루코사민과 콘드로이친의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약사의 시각에서 알기 쉽게 소개합니다.